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28)

관리자2026.04.02 13:303

나는 왜, 어떻게 아나뱁티스트가 되었는가? (128)

중독자들과 중독에서 벗어난 회복자들과 거주 생활공동체를 일구어 가는 가운데 복음은 공동체 안에서 수많은 실제적 아젠다로 다가왔습니다. 그 아젠다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공동체와 부르심 2. 공동체와 선택 3. 공동체와 자유 4. 공동체와 경제 5. 공동체와 평화

6. 공동체와 주거(건축) 7. 공동체와 갈등 8. 공동체와 치유 9. 공동체와 의사소통 10. 공동체와 리더십 11. 공동체와 사명(사역) 12. 공동체와 복지 13. 공동체와 노동 14. 공동체와 쉼(탈진) 16. 공동체와 놀이 17. 공동체와 소유 18. 공동체와 개인 19. 공동체와 일치 20. 공동체와 권위 21. 공동체와 투신(헌신) 22. 공동체와 비전 23. 공동체와 질서 24. 공동체와 성장(성숙) 25. 공동체와 직업 26. 공동체와 자립 27. 공동체와 전통(역사) 28. 공동체와 세속과의 거리 29. 공동체와 문명 30. 공동체와 교육 31. 공동체와 징계 32. 공동체와 가정 33. 공동체와 죽음 34. 공동체와 희년 35. 공동체와 하나님 나라 36. 공동체와 육화 37. 공동체와 생태 38. 공동체와 선교 39. 공동체와 제도교회 40. 공동체와 인간이해 41. 공동체와 욕망 42. 공동체와 영성 43. 공동체와 결혼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 만으로도 세상적 삶과는 대조적인 삶이 되는데 공동체로 살아가다 보면 위에 언급한 수많은 아젠다들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 아젠다들에 대응하면서 공동체의 삶이 양식화 되는데 그 삶의 양식 자체가 세상적 삶의 양식에 대한 대안이 됩니다. 복음적 관점에서 볼 때 공동체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교회와는 그 존재 양식과 삶의 양식이 현저히 다릅니다. 기존 교회, 곧 제도 교회라면 제기되지 않을 수많은 아젠다들이 공동체 교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중에 제기됩니다. 그 아젠다들은 그대로가 공동체의 일상의 삶 가운데 복음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지시합니다. 공동체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제기되는 문제의 하나는 아마도 ‘자유’에 대한 것일 것입니다. 종교를 가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이유도 아마 종교에 묶이기 싫어서 일 것입니다. ‘자유’는 마치 생명과 같아서 ‘자유’ 없는 생은 생이 아니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공동체로 살기로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의 하나도 ‘개인의 자유’가 억압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입니다. 공동체라는 울타리가 억압의 틀이 되고 굴레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개인적인 욕망’이 차단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일 것입니다. 그러한 염려나 두려움은 타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삶에서 누리는 자유는 그러한 염려나 두려움을 뛰어넘는 자유입니다. 공동체의 자유는 묶인 자의 자유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께 묶여 있어야 하듯이, 공동체에도 묶여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완전한 자유를 추구하지만 기실 불완전한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가 주어지면 불안이 야기됩니다. 오히려 예수께 묶여 있고, 공동체 울타리 안에 있을 때 사람들은 자유와 안전,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완전한 자유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허구입니다. 인간의 소비 욕망을 자극하는 현대 문명의 프로파간다일 뿐입니다.

세상에서는 사람들은 넓고 큰 집에 살려는 욕망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자랑이고 인생 성취의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공동체로 살다보면 인간에게 필요한 집의 평수가 얼마가 적당한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개인일 경우, 부부일 경우, 아이들이 있을 경우 등 다양한 조건에 어울리는 집의 평수를 결정하게 됩니다. 라파공동체의 경우 아이들이 있는 가정의 경우 20-22평, 아이가 없는 부부의 경우 15-18평, 독신의 경우 11-13평 정도로 거주 공간의 규모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내는데 있어서 그 기준을 공동체가 제시하려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삶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욕망의 크기를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적절히 조절하려는 것입니다.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주거 공간에 대한 삶의 수준을 공동체적으로 결정하려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위에 열거된 수많은 아젠다들과 마주쳐야 하는데 이러한 마주침 자체가 복음을 실제 삶에 구현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라 할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실제 삶으로 육화하여야 합니다. 복음이 우리의 실제 삶으로 육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낱 관념에 머물거나 주의, 주장에 불과한 것이 될 것입니다. 복음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아젠다들에 응답하면서 공동체는 세워지고 성장하며 성숙해 갑니다. 교리적이고 논리적인 측면에서의 ‘공동체 신학’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동시에 위에 적시된 아젠다에 어떻게 복음적으로, 성경적으로, 실제적으로 대응할 것인가의 측면을 다룬 ‘실제적인 공동체 신학’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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